히키코모리 다이어리: <피부색깔: 꿀색>관람기+애니로 보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지난주부터 열린 <문화청 미디어예술제>에 다녀왔습니다. 해야될 일이 산더미라 전시까지는 못 보고, 작품 상영회만 사전등록하고 후딱 보고 오기로 했는데요, 그나마 사전등록 걸어놓았던 금요일에는 일본 폭설 때문에 그저 방콕…. 화요일에 상영된 애니메이션 대상작과 엔터테인먼트 수상작 모음밖에 못 봤네요. 전시며 상영회며, 양질의 콘텐츠를 무료로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인데… 흑흑.
하여간 각설하고, 오늘은 이날 본 두 프로그램 중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에 빛나는 <피부 색깔: 꿀색 (Couleur de peau: miel)>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
영어 제목이 Approved for Adoption(입양 승인)인 이 작품은, 벨기에의 한 가정으로 입양된 한국인 입양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본인이 한국 출신 입양아인 애니메이션 감독, 융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함께 사용한 작품입니다. 친부모의 흔적을 찾아 한국에 찾아온 감독의 여정과 어린 시절에 찍었던 비디오 화면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주인공의 이야기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형식. 다큐멘터리 감독 로랑 부알로(Laurent Boileau)와 애니메이션 감독 융(JUNG)의 공동연출작이고요, 융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합니다. 극중 묘사에 따르면 감독의 이름 “융”은 감독 본명의 가운데 글자인 Jung을 어떻게 읽어야 할 지 몰라 “융”으로 부른 데서 왔다고... ㅠ.ㅠ 지난해 안시 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관객상, 자그레브 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한국에서도 부천국제학생애니페스티벌에서 상영된 바 있습니다.
입양아 이야기를 다룬 많은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사회적인 문제, 양부모의 학대와 같은 흔히 ‘입양아 문제’라 보이는 내용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주인공 개인의 ‘정체성 혼란’이 전면적으로 대두되지요. 주인공이 입양되어 간 가족은 아이들이 좀 많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지극히 평범한 가족이고 특별히 구박 비슷한 점도 보이지 않습니다. (양엄마가 참을성이 없다는 묘사가 있으나, 이건 사람 성격 문제겠지요.) 그 당시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하는 것은 유행 비슷한 것이 되어, 집집마다 한 명씩은 한국 입양아가 있었다”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적으로도 그다지 별난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다만 양부모의 어머니가 손자들 수를 셀 때 주인공을 빼놓고 세고, 그것을 양어머니가 정정해 주자, “저 동양아이 자꾸 까먹게 되네”라고 하는 에피소드 정도가 주인공의 소외라면 소외를 보여 주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하지만, 주인공은 피부색에서 기인되는 자신의 “다름”에 항상 신경쓰고, 기억 속의 친어머니가 존재하는 상상의 세계로 자꾸만 도망칩니다. 학교 생활 면에서도, 성적표를 위조해서 부모에게 보여주는 등 슬슬 비뚤어지기도 시작하고요. 아무리 주변에서 자신을 가족처럼 대해줘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컴플렉스는 쉽게 뛰어넘기 어려운 본질적인 문제였고,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의 사소한 한마디 한마디에 크게 상처받습니다. 이러한 컴플렉스는, 그림책에서 본 일본, 일본 문화에 푹 빠져 (피부색이 같은) 사무라이를 본인과 동일시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하게 되죠. 어쩌면 벨기에 사회가 피부색이 다른 주인공을 소외시켰다기보다는 피부색에 대한 주인공의 집착이 스스로 주위 사람들을 본인으로부터 소외시켜 갔던 것인지도 몰라요. 수퍼에서 우연히 동생을 발견하고는 피해다니던 주인공을 그 동생이 붙잡아 “나를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거냐”고 울먹이는 장면에서 이런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충돌을 거쳐 결국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결말은, 피부색이나 고향, 출신에 구애받지 않고 열린 태도를 갖고 다가서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인공 주변의 여러 한국 입양아들이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는 점은, 동시에 피부색이나 출신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요.
이번 상영회는 135석 규모의 작은 극장에서 있었는데요, 상업적 대작도 아니고 스크리닝 토크가 딸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만석이었고, 상영이 끝나고는 많은 박수가 나왔습니다. 보통 이런 상영회관객은 예술가 포스 혹은 덕후 포스(--;)를 풍기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특이하게도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관객들, 나이 지극하신 분들도 많이 보러 오셨더라고요. 일본에서는 정식으로 수입되어서, 전국 각지의 소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했나 봅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함께 생각났던 것이, 해외에 거점을 두고 있는 한국계 애니 작가들의 작품이었답니다. 애니메이션 전공으로 외국에 유학가는 분들도 많고 하니 모든 걸 다 소개할 수는 없고, 제 기억에 많이 남고 좋은 평가를 받았던 두 작품만 슬쩍 곁들이로 붙여볼까 합니다.
모국어 Mother Tongue
수잔 김(김홍경) 감독 / 호주 / 2003 / Australian Film Commission
1970년대, 호주로 이주한 가족의 이야기. 역시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호주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가족들이 소식을 주고받기 위해 녹음한 카세트테이프의 음성이 왠지 찡합니다. 2003년 호주 멜버른 애니메이션페스티벌 최우수 호주작품상 수상작이며, 안시, 히로시마, 슈투트가르트 등 여러 애니메이션 영화제 본선에 진출한 작품입니다. 한국에서는 2003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초청상영됐으며, 2004년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한국의 밤 행사에 선정, 상영되었죠.
축 생일 Birthday Boy
박세종 감독 / 호주 / 2004 / Australian Film Television and Radio School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호주 AFTRS 졸업작품입니다. 이게 또 미국 아카데미상 단편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올라서 대한민국이 뒤집어졌었지요. “흑곰아~ 흑곰아~”를 부르는 아이는 호주 아이로, 한국말을 못 하는 아이를 가르쳐서 녹음했다고 하네요. 아아… 이것도 엔딩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 그냥 눈물이… ㅠ.ㅠ 박세종 감독은 이 작품의 대박으로 한국 모 지자체에서 투자를 받아서 그 지자체로 활동거점을 옮기셨는데, 그게 결국은 잘 안돼서 많은 상처를 안고 호주로 다시 돌아가셨다고… ㅠ.ㅠ 2004년 안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신인상, 시그라프 컴퓨터애니메이션페스티벌 최우수단편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이번 주에는 드디어 대망의 소치올림픽 여자싱글이 열리지요!
저는 밤새 남자 싱글경기를 보면서 멘탈이 또 너덜너덜해졌는데요… 토요일 새벽에는 너무 분노한 나머지 잠도 못 자겠더라고요. (아아아아… 나의 시간과 잠을 돌려달라!!!)
역시 믿을 건 연아 뿐! 이라는 생각도 드는 한편, 결과가 어쨌든 연아가 마지막 대회를 후회없이 즐겁게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허나 이러면서 또 눈물 찍 ㅠ.ㅠ)
그런 의미에서, 모 승냥이님이 편집하신 아디오스 노니노 클린 버전을 붙이면서...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다음에는 아마도 올림픽 특집 제 2탄이 올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