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이건 써야돼!: 지하철 매너의 실전편
(여러가지 개인사정으로 지난 마감들을 지키지 못한 점 먼저 사과드립니다.)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지하철 광고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지하철 안이 원체 시끌시끌한 편이고 다른 진풍경들도 자주 볼 수 있어 눈과 귀가 쉴 틈이 별로 없지요. 아마 도쿄 지하철은 조용-한 편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이 적막함이 불편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우주 속에 나만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거창하게도 도시의 소외된 군중은 이런걸까 싶은. 객지생활 하는 외국인이라 괜히 더 그런지도 모릅니다. 지레 움츠러드는 것만 같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요, 보통 더 자주는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헐레벌떡, 허둥지둥, 아니면 멍~ 그렇습니다만. (물론, 도쿄 역시 늦은 저녁 지하철은 시끌시끌합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존대말로 써보려하다보니 정말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 수다가 느네요.
요컨대, 도쿄에서 매일 지하철을 타며, 특별히 시선을 사로잡지도 않는데 유심히 지하철 광고를 관찰하는 일들이 생긴다는 겁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만. 표지 자체를 옮겨놓은 잡지 광고의 경우 글자 자체가 말그대로, 깨 알 같 이 많기도 하고요.
(도쿄의 흔한 잡지광고. 가로에 세로에, 저 다채로운 폰트 사이즈하며, 읽기 힘들다 이것두롸!)
그중에서도 오늘은, 이상하게 기다려지고 챙겨보게 되는 도쿄메트로 지하철 에티켓 광고 시리즈 이야길 해보려 합니다.
생각해보면 지하철은 참 독특한 공간입니다. 규범과 에티켓이 요구되는 공적 공간이면서도, 개인의 욕망을 건드리는 광고가 시야에 늘 걸리고 스마트폰 하나 있으면 언제고 자기만의 방이 만들어지는 사적 공간이기도 합니다.
지하철 에티켓 광고는 일종의 공익광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관적인 정의입니다만, ‘메시지’가 무엇보다 강조되고 사회 전체의 규범과 매너를 가르친다는 점에서 그렇게 느껴집니다. 한편, 지하철의 다른 고객 (=승객) 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것이 지하철 ‘사업’의 이익 추구에 기본이 된다는 점에서는 철저히 기업활동의 일부이기도 하지요.
뭇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도 합니다. 뭇시민이란 서울지하철의 경우 서울시민과 뭇 지하철 승객이 되려나요. 성숙한 시민의식으로서 요구되는 태도나 지켜야할 차내 규범은 사실 몇 개 안됩니다. 어릴때부터 누차 들어온 것들이 늘 반복되는데, 지하철 에티켓 광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동에 옮기는 건 종종 까먹지만, 이미 아는 얘기인터라 전혀 새로울 것이 없지요. 자극적이기는 커녕 식상할대로 식상하여 묻히는게 당연할 지경이랄까요.
그래서인지 최근의 서울 지하철 광고는 우회적인 방법으로서 훈훈한 미담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쓰고 있습니다. 선행을 ‘권장’하는 이야기구조를 갖고있지요. “당신의 훈훈한 행동이 (괄호속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합니다” 랄까요.
그럼, 도쿄메트로의 에티켓 광고시리즈를 몇편 볼까요.
출처: 도쿄메트로홈페이지 (http://www.tokyometro.jp/corporate/csr/society/manner/index.html)
먼저 2013년도 “매너는 마음” 시리즈입니다.
따뜻한 파스텔 색조의 하트 속에는 마주보지 않는 두세명의 인물이 주로 등장합니다. 거칠게 말하면 차내의 가해자-피해자가 대치하는 상황들이 제시된다고 할 수 있지요. 색상, 기호들로 계절을 바꾸어가는 가운데, 찌푸린 인물과 민폐쟁이 인물, 그리고 하트 (마음)이 일관되게 메시지를 이끌어가는 단순명료한 구조입니다. 메인 카피는 “배려도, 염려도. 매너는 마음 (思いやりも、気づかいも。マナーはココロ)” 입니다.
배경의 커다란 하트 속에서 찌푸리거나 놀란 인물들이 민폐쟁이 인물들과 부딪힙니다. 마음씀씀이가 부족할때 하트는 깔리고, 눌리고, 먹히고, 삐져나오고, 뚝뚝 떨어집니다. 배려돋는 2013년 2월, 7월의 상황에서 하트는 서로 만나고 나무에 열립니다. 이때만 인물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광고시리즈를 보며 어딘지 불편한 기분이 들더군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당신(들)’과 ‘우리’가 분리되어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당신들’은 승객, 정확히 말하자면 ‘당신들’은 문제/소동을 일으키는 승객들이지요. ‘우리’는 글쎄요, 지하철과 지하철을 지키는 사람들, 지하철과 ‘우리사회 일반(?)’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 광고들 속에서 나는 경우에 따라 ‘우리’가 될수도 ‘당신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 하기에 달린거죠. 친절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메시지는 “(그러니까) 알아서 잘해라” 정도가 되려나요. 그래서 그런지 묘하게 자극적입니다. 은근하게 훈계조이기도 합니다. 규칙을 지키지않는 당신(=마음을 모르는 당신)은 ‘우리’ 승객들/시민들에게 피해가 됩니다. 또는, 당신의 배려있는 행동에 ‘다른’ 승객들이 미소지으니 앞으로도 신경좀 써주시길, 하는 메시지가 저에겐 남았습니다.
이와 같이 연내 동일한 구도와 구조 속에서 변주해가는 도쿄메트로의 에티켓 광고 캠페인이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2008년 이후 쭉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연중 같은 테마로 반복되고 애니메이션과 동물을 활용한 탓에 친근하게 다가오는 덕에 꽤나 학습효과가 높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런 것이 세뇌?!)
2011년도 <이런 사람을 보았다> 시리즈
(출처: 도쿄메트로 홈페이지 http://www.metrocf.or.jp/manners/manner-poster.html)
2012년도 <!?> 시리즈 (출처 위와 동일)
2011년도 시리즈에서 민폐인간은 친숙한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2012년도에서는 사람의 형상을 되찾죠. 2011년 버전에서 피해자가 광고 밖에 있는 독자(=우리)인 것과 달리 2012년부터는 그림 속에서 캐릭터가 되어 다시 등장하는 점도 다른 점이겠지요. 동물과 캐릭터가 등장하며 좀 귀여워진 것은 아무래도 그 이전 2008~2011년도의 ‘하자’ 시리즈가 상당히 직설적이고 강렬했던 것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기 때문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글이 길어졌으니, 저를 지하철 광고 관찰로 이끈 2011년의 ‘야로우’ 시리즈는 이어지는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사라져가는 서울의 지하철 차내광고와 모두의 시선이 향하는 곳
(성형외과 비포/애프터 사진은 어느새 차내까지 침투하고..)